상감기법이란?
금속, 자기, 나무 등으로 만든 물건에 홈을 파거나 무늬를 깊이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으로 다른 재료를 채워 넣는(감입(嵌入)) 공예기법을 말한다.
주로 금속에는 금, 은, 구리 등을, 도자기에는 본체와 다른 색의 흙을, 나무에는 색깔이 짙은 다른 나무를 박아 넣어 선과 면, 무늬를 표현한다.
이 외에 자개를 내용물로 이용하는 자개상감(나전상감), 가죽상감, 유리상감 등도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꽂을땜’, ‘봉박이’, ‘상안(象眼)’, ‘전감(塡嵌)’ 등 상감을 지칭하는 단어가 매우 많으며, 기법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표면의 높이가 같으면 평(平)상감, 표면이 두드러지면 고(高:高肉)상감, 앞뒤가 같은 모양이 되도록 뚫어서 박은 것은 절(切)상감,
실처럼 가는 선의 무늬를 박아 넣었다면 사(絲:鐵絲)상감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더 많은 상감기법이 있고 다양한 명칭이 존재한다.
상감기법은 기원전 수십 세기 전 유럽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는 목각품에 자개를 박아 넣거나, 짐승의 뼈로 만든 도구, 석기 등에 보석을 박아 넣기도 했다.
이후 무기류에 특별함을 더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점차 널리 알려지며 일상생활용품과 예술품 등에 적용되었다.
금속상감
기원전 17세기부터 12세기 사이에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리스 남부의 고대문명 도시인 미케네에서 출토된 단검에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단검에는 그 검의 몸체에 평상감과 사상감을 한 것이 있고, 북유럽에서도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상감기술은 특히 발달되어 있었다.
한편 오리엔트의 이슬람 나라들에서는 12∼15세기에 황동에 은·동 등을 채워 넣은 여러 종류의 그릇이 만들어졌고, 13세기 무렵에는 전쟁 시 사용하는 무기를 비롯한 각종 도구들에 금·은을 상감했다.
이와 같은 강철 류의 상감기법은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스페인에 전해졌고, 다시 이탈리아에 건너가 16세기에는 독일 및 그 밖에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상감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의 무기류에서 볼 수 있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는 철로 만든 항아리, 등자(鐙子 : 말 탈 때 발걸이) 등에 많이 쓰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향로, 병, 촛대를 비롯한 다수의 일상생활용품에 상감기법의 장식이 남겨져 있다.
평양의 낙랑 지역 출토품 외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금속 상감 유물은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하사한 철제 ‘칠지도(七支刀)’다.
칼날의 양쪽 면에 금으로 상감되어있는데, 칠지도는 강철을 100번씩이나 열처리하여 단조한 특수강이며, 상감 기술은 그 당대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첨단기술이었다.
아쉽게도 칠지도는 아직 일본에 있으며,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상감 유물은 백제의 유물인 천안 화성리 유적의 ‘은상감당초문고리자루큰칼(銀象嵌唐草文環頭大刀)’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백제 최대의 전성기인 근초고왕 시대로 우수한 무기를 앞세워 주변 나라들의 정복활동을 전개하던 때였다.
위의 유물 외에도 천안 용원리, 전 청주 신봉동을 비롯한 여러 고분에서 나온 무기류의 유물을 통해 삼국 시대에 금속 상감 기술이 상당히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 시대 금속 상감에 이용된 무늬는 글자, 선, 봉황, 용, 귀갑, 별무늬 등이었으며, 상감 기술이 표현되는 기물의 재질은 주로 철이며, 이외에 유리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금속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것에 알맞게 제작 기법을 발달시켜왔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네이버지식백과. 두산백과. 미술대사전. 나무위키. 충청일보.